지난 11월, IVE 4명은 도쿄로 향했습니다.
이른 새벽, 김해공항을 떠나는 비행기. 4일간의 워크샵이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11월의 도쿄는 다른 도시가 됩니다.
한 달 동안 도쿄 곳곳에서 디자인과 아트를 다루는 행사가 동시에 열립니다.
미술관과 갤러리, 거리의 작은 매장까지. 평소엔 따로 움직이던 공간들이 같은 시기에 손을 잡고 움직입니다.
우리가 이 시기에 도쿄로 향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우리가 만나러 간 행사는,
DESIGNART TOKYO 였습니다.
도쿄, 그리고 DESIGNART
DESIGNART TOKYO는 2017년 시작된 일본 최대 규모의 도시형 디자인 페스티벌입니다.
오모테산도, 하라주쿠, 시부야, 롯폰기, 다이칸야마. 도시의 거점들이 동시에 갤러리와 쇼룸, 매장과 카페로 바뀌고,
관람객은 정해진 동선 없이 거리를 걸으며 작품과 마주칩니다.
행사 측은 이 12일을 한 줄로 표현합니다.


행사의 이름인 'DESIGNART'는 디자인(Design)과 아트(Art)를 합쳐 만든 말입니다.
디자인이 기능을 다루고, 아트가 감각을 다룬다면,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된다는 선언입니다.
행사가 내건 콘셉트는 이렇습니다.

DAY 1 · 긴자
시간이 쌓인 거리
도쿄에 도착한 첫날, 우리는 긴자로 향했습니다.
긴자는 명품 브랜드의 거리로 알려져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 다른 시간이 흐릅니다.
100년 된 가게의 좁은 입구가 있고, 그 옆엔 현대식 쇼핑몰의 유리 외벽이 빛을 받고 있습니다.
한 거리에 두 개의 시간이 함께 흐르는 풍경.
큰 브랜드 매장이 도시의 큰 음을 담당한다면, 그 사이의 작은 갤러리와 매장이 작은 음을 채웁니다.
두 음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거리에 깊이가 생깁니다.
흥미로운 건, 이토록 다른 두 시간 사이를 연결하는 것이 결국 보도블록과 앤틱한 가로등 같은 작은 디자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좋은 도시 풍경은 차이가 아니라, 그 사이를 잇는 조화에서 만들어집니다.

경계가 사라지는 곳
해가 질 무렵, 우리는 한 곳에 들렀습니다. 히비야 오쿠로지(Hibiya OKUROJI).
이름 그대로, 히비야의 깊숙한 안쪽(오쿠)에 숨은 골목(로지)이라는 곳입니다.
사실 이곳은 1910년에 만들어진 일본 최초의 철도 고가교 아래 공간이었습니다.
위로는 지금도 신칸센과 야마노테선이 달리고, 아래에는 100년이 넘은 붉은 벽돌 아치가 일렬로 이어지며
그 사이사이에 작은 칸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칸들이, 보통의 매장이 아니었습니다.
한 칸은 종이로 만든 조명, 다음 칸은 도자기 그릇, 그 옆은 디지털 영상 작품, 또 그 옆은 가구.
그리고 작품들 사이에 작가가 직접 서서, 자기 작업을 손짓을 섞어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생도 있었고, 이제 막 자기 길을 시작한 개인 작가들도 있었습니다.
행사가 처음에 강조하던, 바로 신진 작가들의 자리가 여기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실용일까, 예술일까.'
그 작은 칸들 안에서, 이 질문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행사가 처음에 말한 그 한 문장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디자인과 아트의 횡단." 책상에 앉아 들었을 때는 추상적인 슬로건처럼 들렸던 그 말이,
그 좁은 통로 안에서는 살아 있는 풍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100년 된 철도가 여전히 위를 달리고, 그 아래에서 새로운 작가들이 자기 작품을 펼치는 풍경.
시간이 횡단하고, 장르가 횡단하는 자리. 히비야 오쿠로지는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DAY 2 · 시부야 / 신주쿠
도시가 화면이 되던 밤
다음 날은 비가 내렸습니다. 비 오는 시부야는 평소보다 더 시부야스러웠습니다.
물웅덩이가 위쪽 간판의 네온을 그대로 비추어 하나의 작품과도 같았습니다.
디자인 아트 행사의 거점인만큼 시부야에도 다양한 전시들과 공간들을 만나볼 수 있어 이곳 저곳을 가보았습니다.
그날 밤엔 도쿄도청에 갔는데, 그곳은 신주쿠 한가운데의 거대한 정부 청사 건물로 밤이 되면 외벽 전체가 화면이 되는 곳입니다.
한쪽에선 한 손바닥만 한 작품이, 한쪽에선 빌딩 한 채가 화면이 되는 도시. 표현의 폭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풍경이었습니다.

DAY 3 · 시부야 골목
질서 속에 숨은 자유
마지막 활동일은 다시 시부야 근방을 걸었습니다.
처음엔 잘 안 보였는데, 천천히 걷다 보니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 정확히 줄을 선 사람들, 잘 닦인 보도블록. 그 사이사이에 작은 벽화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그라피티를 그리고, 누군가가 작은 아트 스티커를 붙이고. 어떤 가게의 문에는 작가의 그림이 직접 그려져 있었습니다.
질서가 잘 갖춰진 곳에 자유가 숨어 있는 풍경. 두 가지가 부딪치지 않고 함께 존재하는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일본의 거리가 가진 독특한 질감이었습니다.
저녁엔 노상 음식과 맥주 한 잔. 여행의 마지막을 정리하기 좋은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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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비행기에서
11월 11일 화요일. 우리는 도쿄를 떠났습니다.
비행기에서 4일을 정리해 보니, 우리가 가진 것은 사진 몇 장과, 그보다 더 많은 질문이었습니다.
이번 워크샵은 단순히 전시와 디자인 사례를 보는 시간을 넘어, 시야를 조금 더 넓힐 수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디자인 영역뿐만 아니라 일본이라는 도시 자체에서 받은 경험들.
거리의 분위기, 건물의 구조와 디테일,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 사람들의 태도와 문화까지.
익숙한 환경에서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우리에게 한 가지를 가르쳐 줬습니다.
디자인은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무언가가 만나는 자리를 만드는 일.
좁은 골목 한 칸의 작품도, 빌딩 한 채의 빛 쇼도,
다양한 분야의 미술작품들도 결국 같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감정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는 일.
행사 홈페이지에 적혀 있던 한 문장이, 그제야 다시 보였습니다.
"감동의 입구."
우리가 IVE에서 매일 만들고 있던 것이, 결국 그것이었습니다.
웹사이트, 브랜드, 공간. 이름이 다르고 형태가 다르지만,
결국 우리도 누군가가 우리 클라이언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입구 하나를 만드는 사람들.
도쿄가 4일 동안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